Seoul Ⅰ, 2000
 
서울의 표정 조각사진 수놓아
노형석, 2003
 

'디카'로 줄여 불리는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하고, 누구나 사진을 일상언어로 쓰는 시대, 사진가 박홍천(43)씨는 거꾸로 손으로 뚝딱거리며 공들여 만드는 사진 초창기 장인의 길을 걷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찍는다고 무조건 디지털 사진은 아니다. 찍는 이의 생각도 철저히 디지털화해야만 진정한 디지털 사진이 아닌가 라고 반문하는 그다. 현상을 즉물적으로 포착하는 사진은 찍는 이의 내면 자체이기도 하다는 철학에 철저히 충실해온 뚝심은 차와 가게 등의 도시 이미지를 조각필름 1만개로 모자이크한 대형 사진작업을 낳았다. 25일 갤러리 인(02-732-4677~8)에서 막을 올린 네 번째 개인전 ‘이미지시티-서울’에 선보이는 득의작들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 1~3〉 연작들은 제가 체험한 서울이란 도시의 내면적 역동성, 느낌 등을 담은 것입니다. 이전 전시인 ‘앨리스에게’나 ‘체취’가 장노출을 통해 한 사진에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축적시킨 것이었다면 이번은 정반대입니다. 보통 카메라로 순간의 시간과 공간을 찍은 조각사진들을 한데 모아 시공간을 축적하는 거지요.”

 

 

가게, 구름다리 밑으로 지나가는 차량, 가로수를 차례로 담은 세 연작들은 각 작품당 3×4m의 엄청난 규모다. 가로 4㎝, 세로 3㎝의 필름 5컷이 연속된 밀착인화 조각사진 2000개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일일이 손으로 붙였다. 찍는 데만 두 달에서 1년 이상 걸렸고, 가로수의 경우는 전시 개막 직전까지도 작업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숱한 조각사진들을 아귀에 맞게 오리고 붙이는 작업에도 보름 이상이 걸렸다. 밤의 아파트 단지 불빛을 성운 같은 조각사진 모자이크로 구성한 〈아파트〉 연작도 서울 곳곳의 단지를 훑으며 찍었다고 한다.

“가게 간판이나 자동차 앞머리를 찍은 작업들은 도시문명의 획일화한 코드나 표준을 암시하는 것이죠. 연작의 마지막인 가로수가 도시의 환경이나 문화를 암시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작업들은 도시를 사는 나 자신, 혹은 인간 군상들의 내면 초상일 겁니다. 바로 제가 겪고 느끼는 이미지들이란 절실함이 오히려 모자이크 사진 속에서는 더욱 낯선 인상으로 나타나게 되죠.”

최근 부친을 대상으로 수십 롤의 필름을 찍으며 또 다른 모자이크 작업을 진행중인 그는 작업이 완결되는 대로 뉴욕으로 날아갈 생각이다. “여러 인종, 문화가 섞인 뉴욕 사람들의 침실을 장기노출 사진으로 찍으려고 해요. 그들의 성과 내밀한 생활문화, 일상흔적들이 어떤 상상력을 부추길지 기대가 됩니다.”

 

- 한겨레, 2003. 4. 24